할로윈 AU 입니다. 다크 인더 할로윈의 비주얼과 설정을 바탕으로 기타 동인 설정, 창작 세계관, 개인적이고 자의적인 캐릭터 해석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분위기가 밝지 않습니다. 어떤 소재든 괜찮으신 분만 읽어주세요.
메인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아슈코레, 미카모모, 타츠히카, 미로아카, 하루유즈, 키타마스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전에 업로드 한 내용을 수정, 편집했습니다. 웹에 올라오는 내용은 샘플 분량이며 전체 내용은 11월 중에 책으로 나올 예정입니다. 샘플 분량은 수정될 수 있으며 책 인포는 이쪽에 있습니다.
쓸쓸하다. 우습게도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떠 버렸다. 도로 잠들고 싶다. 아니, 싫다. 잠들어버린다면 다시 외로워진다. 외로움……. 어렴풋이 흘러간 생각이 스스로를 비웃었다. 앞으로 영영 혼자일 텐데 잠이 들었는지 아닌지가 무슨 상관이람. 그는 눈을 감았다. 감긴 눈꺼풀 틈으로는 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어둡게. 더 어둡게. 의식은 조용히 가라앉았다.
잠은 한없이 무거웠다. 깊은 어둠 속에서 생각할 것은 많지 않았다. 생각은 두서없이 흘러갔다. 일찍 좀 일어나라 성화였지. 어차피 밤에 사는 마물끼리 무슨 건전한 척을 해 보겠다고. 매번 웃거나 시비를 걸었지만 사실은 깨우러 오는 게 좋았다. 같이 잠들어 주는 게 좋았다. 일어나기를 기다려주는 게 좋았다. 함께 잠들어주는 게 좋았다. 잠들어 있을 때면 어렴풋이 들리는 노랫소리도 좋았다. 일어나면 노래가 멈추고는 했지. 다시 해보라고 불같은 성미를 살살 긁어보아도 실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핀잔만 들었다. 맨정신으로 자장가를 들은 일은 결국 없었다.
붉게 타오르는 것 같은 눈. 만져보면 얌전히 사락거리던 머리카락. 조금 작은 몸. 낮은 목소리. 따뜻한 손.
“…….”
안 되겠다. 역시 보고 싶다.
아이조메 켄토는 눈을 떴다. 깨어버린 의식이 다시 온기를 찾았다. 몸은 한없이 무거웠다. 모든 감각이 어지러웠다. 잠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나긴 꿈을 꾸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고작 몇 시간 자고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사방이 어두웠다. 몸에 피가 돌기 시작하고서야 비로소 머리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았다. 반쯤 일어나 앉았던 켄토는 이마를 짚었다. 두통은 머리를 영영 쪼개려는지 맹렬한 기세로 그를 덮쳤다.
한참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프다. 싫다. 두서없이 흐르던 의식은 재차 외로움을 깨달았다. 한 사람을, 떠올렸다.
“……고우시.”
고우시는 켄토가 일어나기 전에는 어지간해서는 그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귀찮은 놈이라도 투덜거리면서도 매번 그랬다. 다른 곳에 가 있다면 어디에 있다 흔적이라도 남겨두었다. 그러나 함께 고르고 장식한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붉은 커튼만이 살짝 흔들렸다. 켄토는 안도했지만 그 너머에서 고우시가 불쑥 나오지는 않았다. 방에는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켄토는 황급히 침대에서 내려섰다. 힘없는 다리는 한 번은 넘어질 뻔 하고 한 번은 무릎이 풀리면서도 정신없이 방을 나서 복도를 달렸다.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다. 나이가 몇인데 제대로 걷지도 못하냐며 빈정거리는 사람이 없었다. 허우대만 멀쩡해야 쓸모없다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 외로움은 공포를 넘어서 순식간에 그를 파먹었다.
“……!”
절망까지 치닫는 사고의 끝에서 작은 소리는 마치 기적처럼 들렸다. 켄토는 희미한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뛰었다. 높고 맑은 목소리가 문 하나를 넘어서도 선명하게 들렸다. 켄토는 그제야 조금 진정했다. 그는 한숨을 몰아쉬고는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헝클어진 머리와 흰 셔츠에 바지 한 장 뿐이던 차림이 천천히 바뀌어갔다. 그림자가 내려앉듯 겹쳐지기 시작해 외투와 장식을 만들어내었다. 켄토는 자주 입고 다니던 옷을 갖추었다. 평생 사용해 온 덕에 숨 쉬듯 익숙하고 간단한 마법인데도 머리가 살짝 아팠다. 심호흡을 하며 그는 머리를 정돈했다. 두통에 일그러지려는 얼굴을 천천히 진정시켰다. 문을 두드릴 무렵 켄토는 평소와 같은 모습이 되어있었다. 입가에 띠운 미소는 허세일지도 모르겠지만.
“들어와-, 어?”
켄토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역시 유우타가 있었다. 문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작았다. 같이 대화하던게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유우타의 높은 목소리만은 멀리서도 명확했다. 켄토는 방 안을 살폈다. 유우타 말고는 사역마들밖에 없었다. 금방이라도 물어뜯을 듯 이쪽을 노려보는 데빌고우시야 언제나 그렇듯 사나운 눈매였지만 켄하토도 꺼림칙한 표정으로 켄토를 보고 있었다. 아슈몬은 주위를 둘러보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또 둘이 싸우기라도 했을까. 정말 주인을 닮은 모습들이었다.
평소와 같은 모습에 안심한 켄토는 다시 한 번 주변을 돌아보았다. 거실에는 유우타 뿐이었다. 대화를 하고 있던 게 아니었나? 사역마와 말을 했던 걸까? 켄토는 실망했다. …여기엔 있을 줄 알았는데. 그는 아쉬움을 숨기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안녕. 좋은 밤이야, 유우타.”
“켄켄! 일어난 거야? 몸은? 몸은 괜찮아?”
유우타는 빠른 속도로 켄토에게 접근했다. 흡사 달려드는 듯한 기세였다. 켄토는 조금씩 뒷걸음질치다 급히 소파에 앉았다.
“잠깐, 유우타. 잠깐만. 진정해봐, 유우타!”
달래봐도 전혀 통하지 않았다. 바짝 붙어 온 유우타가 켄토의 턱을 붙잡고 휙휙 돌려대었다. 원래가 살갑고 스킨십에 스스럼 없는 상냥한 아이였다. 괜찮은가 얼굴을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은 알겠다. 하지만 덩치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동족이 힘을 조절하지 않으니 아무래도 얼굴이 아팠다. 켄토는 호들갑스런 유우타를 조금 힘주어 밀어냈다. 여유가 생긴 틈으로 고개를 돌려 급히 방 안을 살폈다. 다시 돌아봐도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머리가 좀 아프지만 괜찮아, 유우타. 내가 대체 어제 얼마나 마신 거지? 집에 돌아온 기억도 없는데…. 유우타, 네가 데려 왔어?”
“…켄, 켄?”
“아니야? 그러면 고우시인가……. 정말, 나 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지금 기억이 하나도 안 나서.”
켄토는 이마를 짚었다. 두통은 규칙성이 없었다. 유우타와 얘기하는 동안에도 난데없이 찾아들며 그를 괴롭혔다. 잠시 눈을 감고 있던 켄토가 고개를 들었다. 유우타는 켄토를 보고 있었다. 아마도 내내 보고 있었겠지. 걱정을 한껏 담은 눈에서 켄토는 불길함을 읽어냈다.
“…유우타. 고우시는? 고우시는 어디 갔어?”
가장 물어보고 싶었던 것을 이제야 입에 올렸다. 유우타가 멈칫했다. 내내 켄토를 지켜보던 따뜻한 눈이 옆으로 비껴갔다. 유우타의 시선은 한 군데 머물지를 못했다. 켄토를 보다 방을 둘러보다 고갯짓을 따라 정신없이 움직이더니 다시 켄토를 보았다. 무슨 일이 있나. 머리는 아프고 심란한 와중에도 유우타의 안부가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갈피를 잡지 못하던 유우타의 시선은 한참이 지나야 켄토에게 고정되었다. 유우타답지 않게 무거운 한숨이 한 번 지나갔다. 정말로 무슨 일이 있나? 켄토는 사역마들을 내려다보았다. 옹기종기 모여 이쪽을 올려다보던 사역마들은 켄토의 눈이 닿자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보아도 부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켄켄, 머리 많이 아파?”
“…응, 조금.”
유우타의 걱정이 따뜻했다. 하지만 켄토가 원하는 답은 아니었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눈을 떴을 때부터 계속 이어지던 불안함이 심장께에 돌돌 모였다. 불안은 시꺼먼 똬리를 틀었다. 켄토는 조금 더 기다려 보았다. 그러게 작작 좀 마시지 그랬냐. 빈정거리며 남의 평소 행실까지 지적했을 목소리가 아직도 들리지 않았다.
“고우칭. 고우칭은 지금…….”
“고우시는?”
“고우칭은 켄켄이, 켄켄이 직접 찾아야 해. …그렇게 말해달래.”
“뭐? 그게 무슨 뜻이야?”
유우타는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켄토는 한 번 더 유우타를 부르려다 입을 다물었다. 유우타는 소파에서 몸을 돌려 반대편의 창을 보았다. 꾹 다문 입가가 떨리고 있었다. 켄토는 벽에 기대어 이마를 짚었다. 두통이 경고하듯 의식을 쥐어짰다. 주인의 고통을 보고도 켄하토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무표정한 켄하토 옆에서 데빌고우시는 아예 켄토를 외면한 채 하나뿐인 눈을 감아버렸다. 미미하게나마 걱정을 하는 것은 아슈몬뿐이었다. 거실 가득 냉막한 기류가 흘렀다. 어느 것도 평소와 같은 일이 없었다.
“알았어. 고마워. 나는 잠깐 나가 볼게.”
두통이 조금 가셨다. 살만해진 틈을 타 켄토는 천천히 걸어 거실을 나섰다. 사람의 눈을 떠난 걸음은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풀려가는 다리를 다잡으며 켄토는 저택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으리으리하지는 않더라도 나름 열심히 꾸미고 가꿔둔 그들만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저택은 더는 예전만큼 안락하지 않았다. 가끔 부서진 가구며 낡아버린 물건, 어지러운 먼지들. 익숙한 저택 사이사이에 불길하기 짝이 없는 풍경들이 지나갔다. 고우시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켄토는 결국 제 방으로 돌아왔다.
혹시 어디 숨어 있는 걸까. 모습을 감추는 마법을 쓴 건 아닐까. 고우시는 마법을 쓸 줄 모르고 혹여 쓸 수 있더라도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할 성격은 아니었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켄토는 만에 하나에 매달렸다. 그는 기척을 찾아내는 마법을 쓰려 했다.
“응?”
하지만 마법은 제대로 사용되지 않았다. 마력은 뜻대로 모이지 않았고 집중하느라 힘이 들어간 머리만 더 아팠다. 마력으로 만들어둔 옷마저 사라질 듯 일렁거렸다. 대체 어제 무슨 짓을 했기에 간단한 마법 하나도 제대로 쓰지 못하나. 켄토는 혀를 찼다.
결국 발로 돌아다니며 눈으로 살필 수밖에 없었다. 한참 고우시를 찾아다니다 더는 움직이기 힘들어졌다. 방에 돌아 왔을 때는 몸도 마음도 너덜거렸다. 제아무리 흡혈귀의 왕이라 해도 온전치 않은 상태에서 무리를 해서야 버틸 수가 없다. 켄토는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겉옷을 어둠 속으로 흩뜨리고 아픈 머리를 끌어안았다.
외롭다고 생각할 틈조차 없었다. 곧 지옥 같은 잠이 찾아들었다.
유우타는 닫힌 문을 한 번 돌아보고 한숨을 쉬었다. 켄토는 내내 태연한 척을 했지만 계속 머리를 짚을 때마다 아픔에 표정이 일그러졌고 비틀거리는 걸음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웠다. 그래도 눈을 뜬 게 어디야.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했지만 켄토의 상태를 직접 보니 또 다른 걱정이 생겼다. 유우타는 한숨을 쉬었다.
“와라, 세 마리.”
고우시는 사역마들을 불렀다. 사역마 셋이 차례로 고우시 쪽으로 다가가 뛰어올랐다. 소파 뒤편에 기대어 서 있던 고우시는 유우타 앞을 지나 켄토가 잠시 앉았던 자리에 푹 파묻혔다. 어떻게든 기분을 풀어보려는 걸까. 고우시는 불러들인 사역마 세 마리 틈에 파묻혀서 쓰다듬어 보기도 하고 있었지만 차갑게 가라앉은 표정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
“고우칭, 괜찮아?”
고우시는 닫힌 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마 켄토를 생각하고 있겠지. 유우타는 고우시를 걱정 어린 눈으로 지켜보았다. 켄토가 깨어났지만 상황은 어쩌면 더 나빠졌다. 분명 좋은 소리는 듣지 못하리라. 그럼에도 유우타는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나보다는 저 놈이 괜찮지 않은 것 같은데.”
생각보다는 부드러운 대답이었다. 그러나 얼굴은 더 험악해졌다. 고우시의 짜증과 초조함까지 온전히 동의하지는 못하겠지만 유우타도 켄토의 상태가 걱정이었다.
고우시는 켄토를 따라 들어와 계속 소파 근처에 있었다. 켄토는 눈앞에 있는 고우시를 보지 못한 듯 굴었다. 필사적으로 찾는 모습이 연기나 장난이 아니어 보였다. 켄켄. 고우칭, 지금 앞에 있잖아. 유우타는 말하려 했지만 고우시가 말렸다. 켄토에게 전할 말을 유우타에게 지시하는 동안에도 고우시는 켄토를 계속 노려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일까. 유우타는 안절부절 못하며 고우시의 안색과 문 너머 켄토의 기척을 살폈다.
“나는 가본다. 잘 자라, 아슈.”
“…으응. 고우칭도.”
무뚝뚝한 인사를 남겨놓고 고우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보는 사람이 무서울 만큼 화가 치밀어 있어 말을 붙이기도 힘들었다. 사역마 세 마리도 걱정이 가득한 채 고우시를 배웅했다. 유우타는 창밖을 보았다. 아직 한밤인 하늘이 새까맸다. 이른 인사였다. 하긴, 고우시도 지칠 만 했다. 겨우 깨어난 켄토가 그런 상태일 줄은, 그런 말을 할 줄은 유우타도 몰랐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