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사귀지 못하는 아이카네입니다. 거북님의 소재와 대사를 바탕으로 썼습니다. 좋은 소재를 잘 살리지 못한 것 같아서 부끄럽지만 연성 허락해주신 거북님께 다시 한 번 정말 감사드립니다ㅠㅠ
훅 가까워졌다. 내려다보이는 검은 머리와, 잠시 마주친 빨간 눈과, 이쪽을 보고 놀란 얼굴이 천천히 지나갔다. 아. 멍하니 있던 사이 어깨가 부딪혔다. 신곡 안무 중유우타가 앞으로 나서고 뒤쪽의 켄토와 고우시가 한 발짝씩 다가서는 부분이었다. 그래도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을 텐데. 켄토는 서둘러 몸을 떼었다. 뭔가 착오가 있었던 걸까. 부딪힌 사람은 지레 놀란 켄토를 수상쩍은 눈으로 보고는 안무를 이었다. 사소하게 스텝이 꼬인 걸로는 멈춰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고우시다웠다. 쉬지 않고 움직이는 사이 맺힌 땀방울이나 소매를 걷어 내놓은 맨 팔까지도. 켄토는 홀로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노래가 끝났다. 고우시는 재생을 멈추었다.
“응? 고우칭, 벌써 쉬는 거야?”
“어. 잠깐 확인할 게 있어서.”
별일이었다. 또 녹초가 될 때까지 연습을 할 줄 알았는데. 켄토는 거울 앞으로 갔다. 연습하는 동안 얼핏 시야를 스치던 앞머리가 신경 쓰이던 참이었다. 휴식은 나쁘지 않았다.
앞머리는 다행히 흐트러지지 않았다. 무사를 확인했지만 한 번 눈이 가니 신경 쓰이는 부분이 생겼다. 켄토는 이마에 드리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한 번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에는 역시 익숙한 일이 편했다.
“어이.”
“……?!”
누군가가 건드렸다. 고우시였다. 앞머리 다듬기에 열중하던 켄토는 뒤에서 다가오는 걸 눈치 채지 못했다. 진정되던 심장이 다시 덜그럭거렸다. 고우시가 맨손으로 건드린 어깨가 옷 너머로도 화끈거렸다.
“아, 뭐야. 고우시였잖아.”
“뭐?”
새빨간 눈은 언제나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와 마음에 박혔다. 켄토는 조심히, 어색하지 않도록 고개를 돌렸다. 똑바로 쳐다보는 눈과 마주치면 어쩐지 그도 같이 달리거나 땀투성이가 될 때까지 연습을 하거나 제 마음을 술술 불어야 할 것 같았다. 다행히도 눈이 자주, 오래 마주칠 만큼 살가운 사이가 아니었다. 얼굴이 보고 싶어질 때마다 핑계를 짓는 것이 조금 귀찮고 번거로워도 괜찮았다. 괜히 욕심을 부렸다 영영 못 보게 되는 편이 더 싫으니까.
“헛짓 그만 하고 얼른 와. 안무 다시 맞춰 본다.”
“네, 네.”
말을 마치기 무섭게 음악이 흘러 나왔다. 고우시와 유우타는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켄토는 서둘러 제 자리로 돌아갔다.
몸에 익을 때까지 반복한 동작이 부드럽게 흘러갔다. 한 바퀴 돌고, 옆으로 한 걸음. 이번에는 부딪히지 않았다. 방금 전은 정말 우연이었을까. 그에게는 몇 없을 기회였다. 티격태격하는 동료로서, 같은 아이돌로서 장난을 치거나 가까이 서야 할 상황은 많았다. 그때마다 태연해지려 애썼다. 시비를 걸면서도 미움 받지 않을까 자꾸 눈치를 보았다. 설렐까봐, 혹여나 설렜다는 사실이 들킬까. 손도 마음도 얄팍한 한 겹을 두르지 않고서는 절대 다가가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닿고 싶은 마음을 어쩔 수 없었다. 매번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상황을 살피는 일만 늘었다.
사고 없이 안무가 끝났다. 켄토는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무 것도 없는 손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용기가 없었다. 만약 거절당한다면. 가정만으로도 마음은 손쉽게 내려앉았다. 사랑은 언제나 뒤안길을 걸었다. 언제나 조심스럽게 드러내어 살그머니 다가갔다. 손끝이 먼저 사랑을 하면 어쩌나. 진심이 줄줄 읽히는 중이면 어쩌나. 그럴 바에야 닿지 않아도 좋았다. 미움 받지만 않으면 만족할 수 있었다.
아니다. 사실은 맨손을 잡고 싶었다. 네가 사랑스럽다, 소중하다 말하고 싶었다. 고우시가 함께 있어준다면, 내치지 않는다면 언제까지고 손을 붙잡고 있고 싶었다.
닿을 수 없었다. 거기서부터 이미 닿고 싶은 마음이 넘치고 있는데도.
무언가가 닿았다. 누군가의 손, 이었다. 손은 두꺼운 외투를 지나 고우시의 허리를 감쌌다. 허리를 잡으려 했던 걸까. 큼지막한 주제에 퍽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닿았다고 느낀 게 착각인줄 알았다. 그러나 한 번 느껴진 손은 제 자리를 찾았다는 듯 고우시의 허리를 떠나지 않았다. 어디서 왔는지는 뻔했다.
“네, 그대로-. 한 번 더.”
한창 촬영 중이었다. THRIVE만이 아니라 B-project 전체의 활동에 사용될 사진이라 했다. 지급받은 의상은 부담스러울 만큼 화려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촬영인데도 어쩐지 기합이 더 들어갔다. 사람이 그렇게 일을 하는 중에 이 손은 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고우시는 손 주인을 돌아보려 했다.
“카메라 봐야지, 고우시.”
작은 목소리가 귓가를 기었다. 낮게 깔려 사람을 어르는 척 시비를 속살거렸다. 허리의 손도 건재했다.
“프로잖아?”
무슨 얼굴로 이런 소리를 하고 있을까. 고우시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어설픈 도발에 응할 바에야 얌전히 있는 편이 나았다. 화자가 뻔뻔해서 우스울 뿐 말 자체는 옳았다. 고우시가 대꾸하지 않으니 켄토도 조용해졌다. 다만 어설픈 손은 붙든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아슈, 더 기대지 마. 무겁다.”
“그치만 방금 전에 자세 불편했으니까. 에-잇.”
“아, 누르지 말라니까.”
고우시의 오른쪽 어깨에 얹혀있던 유우타의 팔이 조금 더 올라왔다. 자연히 몸이 눌리며 뒤로 조금 밀려났다. 허리를 감싸던 손은 고우시가 가까워진 만큼 물러섰다. 이쪽을 한 번 살피고는 오래 머물지 못하는 시선이 있었다. 티내고 싶지 않은 걸까. 이미 다 들킨 주제에.
“너도 긴장이라는 걸 하냐?”
아직 촬영 중이었다. 고우시는 옆을 돌아보지 않았다. 비웃음을 거드는 입 꼬리가 올라갔다. 뭐, 이 정도라면 이미지에도 잘 맞지 않을까. 아마도. 고우시는 낙관했다.
“전혀? 고우시가 긴장한 걸 나한테 뒤집어씌우지 말아줄래?”
유쾌하던 기분이 한 번에 가셨다. 김이 빠졌다. 이렇게까지 아닌 척을 하면 더 파고들기도 귀찮아지는 법이었다.
“됐다, 네가 다 그렇지.”
고우시는 더 말하지 않았다. 손은 가까이 다가갈 수도 멀어질 수도 없는 거리에 그대로 있었다. 카메라가 꺼질 때까지, 그대로.
촬영이 잠시 멈추었다. 감독은 사진을 확인하고 있었다. 분위기를 보건대 나름 잘 나온 것 같았다. 추가 촬영은 없을 듯싶다. 고우시는 뻐근한 어깨를 움직였다. 털이 붙은 외투는 보이는 만큼 무거웠다. 걸쳐둔 옷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어깨며 목을 풀고 있으려니 여태 신경 쓰이던 손이 사라졌다. 켄토는 슬그머니 멀어져 있었다. 언제 가까이 온 적 있었냐는 태도였다.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이 태연한 척을 했다. 흐트러지지도 않은 앞머리를 매만지는 꼴이란.
곁에 서서도 다가오지 않았다. 한 겹 덮는 것이 없다면 맨손으로는 닿지 않으려 했다. 거절할 수도 마주 잡을 수도 없는 상황에만 슬쩍 손을 뻗었다 되돌아갔다. 매번 이런 식이었다. 이래놓고 이쪽 눈치를 보는 척이나 하지. 허. 고우시는 비웃었다. 한숨과 비슷한 소리였다. 겁만 많은 놈이 대체 뭐가 문제라 이러고 있나. 어설프게 숨은 마음이 계속 근처를 얼쩡거렸다. 입은 기꺼이 맞춰줄 수 있다. 그러나 굳이 멱살을 잡고 끌어내 줄 의리는 없었다.결판이 나지 않는 줄다리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