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즈가 달의 신인 미카모모입니다. 노래 Hijo de la luna에서 모티브를 얻어서 썼지만 각색과 개인 설정이 많습니다. 일본의 자장가 ねんねんころりよ를 인용했습니다.
익숙한 노래가 들렸다. 모모타로는 반쯤 감기던 눈을 가만히 떴다. 잘 자라, 잘 자거라 우리 아가야. 미카도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가는 착한 아이지. 잘 자거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던가? 모모타로의 고개가 갸웃이 기울었다. 곧 노래가 멈추었다. 미카도가 더 가까이 붙어 모모타로를 도탑게 끌어안았다. 말간 눈은 걱정과 욕심 사이에서 모모타로를 보았다.
“모모타스, 무슨 일 있어요?”
“무슨 일은 없어. 그냥…….”
모모타로는 머리를 옆으로 살짝 굴렸다. 미카도의 오른 어깨를 베고 있던 머리가 왼 어깨로 넘어갔다. 그냥? 미카도가 웃었다. 흘러내린 붉은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모모타로가 끝내지 못한 말을 채근했다.
“어디선가 들어본 노래 같아서.”
“자장가예요. 인간들이 아이를 재울 때에 많이 부르죠. 저도 잠든 모모타스에게 불러준 적이 있고요.”
“그랬을까.”
미카도가 모모타로를 끌어안았다. 다정하게 두른 팔, 천천히 다독이는 손은 애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모모타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은 하지 못한 채였다. 미카도의 노래는 익숙한 곡조를 따라 막힘없이, 다정하게 흘렀다. 그러나 모모타로가 기억하기로는 가사가 분명…….
“그랬을 거예요.”
잘 자라, 잘 자거라, 우리 아가야. 모모타로의 생각은 얼마 이어지지 못했다. 미카도가 다시 자장가를 부르자 모모타로는 오래지 않아 미카도의 품에 기대어 잠들었다. 한참 졸리던 차였다. 사랑도 잠도 다디단 밤이었다. 그가 잠든 후에도 미카도의 손은 토닥토닥, 모모타로를 얼렀다.
기도가 하늘에 닿는다는 말이 비유가 아니었다. 덩어리진 기도가 미카도를 찌르고 있었다. 부름은 아플 만큼 간절했다. 그는 눈을 떴다. 잠에 취해 나른한 몸을 일으키자 붉은 빛이 그의 품에서 살짝 굴러 나왔다. 큰일 날 뻔했네요. 미카도는 붉은 빛을 옷자락으로 감쌌다. 품에 안는 손길이 한없이 섬세했다.
‘신이시여.’
솜털같이 가볍게 들리던 기원이 꾸준히 모였다. 쌓아놓고 보면 갸륵하리만치 무거운 마음이었다. 미카도는 침상 밖으로 나섰다. 가벼운 잠옷 위에 옷감이 서서히 덧씌워지며 무겁고 화려한 정복으로 모습을 바뀌었다.
‘신이시여, 제게 부디.’
외면할 수 없는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 미카도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낡고 무너져가는 신당이었다. 기도하던 여인은 소리 없이 놀라 몸을 물렸다. 붉은 머리칼이 흔들렸다. 매번 기도로 만난 이였다. 미카도는 일방적인 낯익음을 담아 빙긋 웃어보였다.
“당신에게 아이를 주면,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주나요?”
여인은 서둘러 바닥에 엎드렸다. 소리 없이 나타난 미카도를 앞에 두고 굳어있던 여인은 납작 엎드려서야 비로소 떨 수 있었다. 달의 신전에서 드린 기도에 응답해 내려온 이에게 마땅히 바쳐야 할 경배였다.
“그렇게 겁먹을 것 없어요. 저는 거래를 하러 왔으니까. 자, 고개를 들어요.”
여인은 시키는 대로 고개를 들었다. 미카도의 목소리는 신위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친절했다. 그럼에도 그를 올려다보는 여인의 얼굴에 두려움이 가시지 않았다. 미카도는 웃었다.
“정말로, 그렇게 겁먹지 않아도 괜찮아요. 저는 당신에게서 아무것도 빼앗지 않을 겁니다.”
한결 다정한 목소리를 꾸며내 얼러도 여인은 안심하지 못했다. 미카도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손 안에 둥근 빛을 띄웠다. 부드럽게 흔들리는 붉은 색이 한 데 모여 선명하게 빛났다. 여인은 미카도가 띄운 빛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경계조차 잊은 모양이었다. 이게 무엇인지 짐작하지 못할 텐데도.
“당신에게 아이를 줄게요. 자, 손을.”
빛이 천천히 떠올랐다. 여인은 저도 모르는 새 손을 내밀었다. 미카도의 손을 떠난 빛이 여인의 손 위에 내려앉았다. 빛을 받은 여인은 몹시 기뻐했다. 미카도는 허전한 손을 소매 속으로 감추었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괜찮나요?”
정신없이 기뻐하던 여인이 고개를 들었다. 손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듯 빛 망울을 떠받든 채, 다만 미카도를 보는 얼굴에 커다란 환희의 틈에 한 톨 불안이 섞여들었다.
“아이를 잘 부탁해요. 만약 당신이 더는 그 아이를 기를 수 없게 되면 아이는 제가 데리러 올 테니.”
여인은 고개를 조아리며 눈물을 흘렸다. 형체가 불분명한 빛도 그 상황을 알았을까, 빛은 여인의 손 안으로 천천히 녹아들었다. 여인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몸을 떨고 제 배를 끌어안았다. 미카도는 조금 흐뭇하게, 그보다는 쓸쓸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여인은 한껏 기쁜 얼굴로 신전을 나섰다. 그렇게나 행복할까. 여인은 미카도가 내건 조건을 선뜻 수락했다. 신께서 대부가 되어주신다니. 황홀한 목소리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글쎄, 과연 이게 행복한 시작일까? 미카도는 달로 돌아왔다. 혼자 눕는 침대가 허전했다. 만남을 위해서라 할지라도 헤어짐은 마음을 갈가리 저몄다.
열 달 열흘. 누군가에겐 못 견디게 길 테고 누군가에겐 눈 깜빡이기조차 아쉬울 만큼 짧은 시간일 테다. 그렇다면 당신에게는 어땠을까.
기나긴 시간을 살아가는 신들에게 열 달은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하루가 갈수록 쌓이는 그리움과, 기원과, 소원과, 당신을 만나면 해주고 싶은 많은 말들. 미카도는 머지않은, 그러나 너무도 긴 시간을 조용히 감내했다.
귀를 기울이면 노랫소리가 들렸다. 잘 자라, 잘 자거라. 한 마디 한 마디가 다정함으로 가득 찬 노래였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작은 소리였지만 노래는 무엇보다 또렷하고 아름다웠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들을 말은 몇 종류뿐이었다. 부디 건강하게 태어나렴. 어서 너를 만나고 싶구나. 미카도는 웃었다. 어서 만나고 싶네요. 부디 건강하길. 실로, 그 기원대로였다.
드디어 아이가 첫 울음을 뗐다. 여인의 비명이 울린 지도 한참이 지났다. 미카도는 고개를 들었다. 바깥에서 서성이던 남편은 울음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방 안으로 뛰어 들었다. 마음이 급한 움직임이 하나하나 요란했다. 아이를 받아들고 놀란 산파의 신음은 시끄러운 발소리에 묻혔다. 가장 멀리서 지켜보던 미카도만이 작은 탄식을 들었다. 여인이 아이를 안아들고 정신없이 기뻐했다. 사랑하는 남편과의 아이를 간절히 바라던 이였다. 남편이 방 안에 들어섰다. 아내를 너무도 사랑하던 이였다. 그는 아내에게 입맞춤을 남겼다. 기쁨에 차 갓 태어난 아이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귀를 찢는 비명이.
이미 알고 있던 일이라도 닥치면 또 다르게 느껴지는 법이다. 미카도는 한숨을 쉬었다. 어린아이가 듣기에는 너무 큰 소리였을 텐데 괜찮을까. 갓 태어나 여린 아이를 달로 데려와 세상의 온갖 더러움, 시끄러움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고 싶었다. 미카도는 미래를 떠올리고서야 간신히 손을 멈추었다. 아직 그에게는 약속이 남아있었다. 머지않았다. 곧 아이를 맞아와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채워서 키울 수 있다.
미래를 품은 기대와 지금을 보는 걱정이 부딪혔다. 미카도의 표정은 결국 무감하게 가라앉았다. 새로운 달의 신이 태어났다. 미카도는 여리고 사랑스러운 이의 탄생을 축복했다.
아이는 보채지 않았다. 쌀쌀한 날씨에 고작 강보 한 겹 두르고 조용히 이쪽을 올려다보는 모습을 그저 의젓하다 평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미카도는 요람에 든 아이를 안아 올렸다. 투박한 요람은 아이에게 어울릴 만한 물건이 아니었지만 덕분에 이 난리 속에서도 아이는 무사했다. 미카도의 품에 안긴 아이가 조용히 눈을 깜빡였다. 아이답지 않은 표정으로 미카도를 올려다보았다. 붉고 푸른 눈이 천천히 깜빡이며 그와 눈을 마주쳤다. 어느 쪽도 흐리지 않고 선명한 붉은 색과 푸른 색. 미카도가 보기에는 마냥 아름다운 눈이었다. 붉은 눈을 가진 아버지와 어머니는 받아들이지 못한 색이라 할지라도. 대상없는 질투에 미쳐간 어떤 사람이 자신의 가족을 죽여버렸다 할지라도. 두 생명을 끊어버리기까지 단 한 번도 아이를 돌아보지 않았다 할지라도. 미카도는 곧 방에서 사라졌다. 아이를 품에 안은 채였다. 질척하게 스며드는 피가 곧 요람 밑까지 붉게 물들였다.
미카도는 천천히 요람을 흔들었다. 초승달은 살짝 기울어지며 안에 담긴 아이를 부드럽게 달랬다. 붉고 푸른 눈을 가진 아이는 얌전히 요람 안에서 흔들렸다. 어린 몸은 잠이 많았다. 아이가 도로 잠들자 미카도가 조심히 작은 몸을 안아들었다. 아이가 깨지 않도록 조심히 움직이며 침상에 뉘였다. 보름달은 편안히 아이를 감싸며 부드러운 빛을 뿌렸다. 그러나 아이의 표정은 그다지 편해 보이지 않았다. 왜일까. 달의 기운이 모자라지도 않았고 침대가 불편하지도 않았을 텐데. 미카도는 아기가 잠드는데 필요한 것들을 헤아렸다.
신은 인간의 태를 빌어 태어나더라도 인간과는 다른 생명이었다. 땅에서 태어나 본래 자리로 돌려지기까지 번거로운 절차와 과정은 미카도가 해결한 후였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아기의 어머니는 아이를 재울 때 어떻게 하였더라. 오래지 않은 기억을 더듬던 미카도는 이내 조용한 풍경을 떠올렸다. 아이가 태어난 후로는 본 적 없는 풍경이었다.
“잘, 자라. 잘 자거라, 우리 아가야.”
배가 부른 여인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인 듯 배를 쓰다듬었다. 노래는 부드럽게 달까지 울렸다. 기억나는 대로 부른 노래인데 다행히 틀리지 않았나보다. 아이는 눈을 감았다. 자장가는 마음에 들었을까. 그렇다면 정말 기쁠 텐데.
붉은 빛은 다음으로 태어날 달의 신이라 했다. 보드라운 빛을 만난 순간 그는 제 사랑의 시작을 보았다. 운명이 정해놓은 부모를 기다려 성탄을 맞이하고 달로 아이를 데려오기까지, 운명이 짜 맞춘 비극을 알아도 그는 제 선택을 물리지 않았다. 아이를 무엇보다 사랑할 자신이 있었다. 그는 제 사랑을 맞이할 가장 빠른 방법을 택했다.
“아가는 착한 아이지, 잘 자거라.”
아가의 보호자는 어디에 갔나. 둥둥 북에 장난감 피리.
노래가 끝났지만 아이는 깨지 않았다. 사랑도 잠도 달콤하길 바랐다. 미카도는 아이가 잠든 보름달을 토닥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