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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토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봐야 상황은 바뀌지 않았고 앞에 선 사람의 표정만 더 찌푸려졌다. 여기서 싫다고 못 하겠다고 항의했다가는 휴대전화를 돌려받을 날이 더 멀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얌전히 하란대로 하기에는 그의 기분이 편치가 않았다. 켄토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좋……으윽.”
힘내서 한 글자 말해보았고 그걸로 끝이었다. 말은 반도 하지 못하고 끊겼다. 켄토는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었다. 어이없다는 시선이 느껴졌다. 앞을 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켄켄 힘내-!”
기쁘지만은 않은 독려였다. 고우시와 불려갔다 온 날부터 유우타는 신이 나 있었다. 사장이 대체 뭐라 꼬드겼을까. 이런 억지에 무슨 효과가 있다고 다들 이러는 걸까. 켄토는 고개를 내저었다.
“좋아, 해……. 아 정말, 왜 남자한테 이런 말을 해야 하는 거야?”
“잘했어 잘했어~.”
말을 겨우 끝마치자 유우타가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켄토는 팔을 쓸었다. 좋아한다는 말이 이렇게 버거울 줄 몰랐다. 진심을 담은 고백도 아니었고 벌이나 다름없는 억지였다. 단지 듣는 사람이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소름이 돋는다니.
말을 마친 켄토는 고우시를 보았다. 좋아한다는 말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매일같이 싸워대는 팀메이트에게 들어서야 설레기보다 소름이 끼칠 것이다. 그래도 나는 벌을 받았으니 너도 하는 꼴을 보아야겠다는 억울한 마음이었다.
“좋아해.”
툭. 말이 던져졌다. 잠시 켄토의 심장이 덜걱였다. 고우시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켄토를 보다 벌을 마치기 무섭게 고개를 돌렸다. 이제 됐냐는 투였다. 곁에서 지켜보던 유우타가 고우시의 어깨를 덥석 끌어안았다.
“고우칭도 잘했어~!”
“아, 잠깐. 무거워. 이거 놔, 아슈!”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귓가에 남아 마음을 흔든 말은 착각인 듯 주변은 아무렇지 않았다. 이런 장난 같은 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쪽이 이상하겠다. 켄토는 놀라 살짝 벌어진 입을 다물었다. 입술을 끌어올려 웃었다. 그 역시도 평소 같이 여유로운 웃음을 지었다.
“뭐야, 고우시. 왜 그렇게 자연스러워? 설마 여태 나를 좋아했던 건….”
“뭐? 무슨 헛소리야. 잠꼬대는 자면서 해라.”
물론 농담으로 한 말이었지만 이런 반응이 돌아오면 조금 욱하게 되었다. 켄토는 짜증을 다스렸다. 사장의 충실한 감시자가 보고 있었다. 또 싸웠다간 벌만 길어진다.
켄토가 무슨 생각을 했든 고우시는 기타 가방을 메고 자리를 떴다. 연습실에 가려는 걸까. 지겹지도 않나. 켄토는 문을 나서는 고우시를 바라보았다. 잠시 멈춘 고우시가 고개만 살짝 돌리고 말 했다.
“이런 거 연기라고 생각하면 별 것도 아니잖아. 뭘 쓸데없이 의미부여를 해서는…….”
그런 거 한 적 없다고 반박하기도 전에 고우시가 나가버렸다. 켄토는 청자를 잃은 말을 삼켰다.
고우시는 연기는 잘 해도 기본적으로 감정을 잘 숨기지 못했다. 싫을 때도 좋을 때도 얼굴에 다 티가 났다. 그런 고우시가 안색 한 번 변하지 않은 채 말했다. 완벽한 연기라는 증거였다.
다하지 못한 말은 의지가 되었다. 그렇다. 연기이고 거짓말이면 되었다. 켄토는 그날 거울을 보며 좋아한다는 말을 연습했다. 떨리지 않게. 긴장하지 않게. 싫어하는 티조차 내지 않게. 오기로 익숙해져가는 날들의 시작이었다.